메인 칼럼 개발일지 작업물 연락처

사라진 ’님’의 무게와 거리

호칭에서 ’님’ 하나를 떼어냈을 때 발생하는 소음과 그 이면의 관계적 문법에 관하여.

식당에서 물을 청할 때 ‘사장님’이라 부르는 것과 ‘저기요’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는 묘한 공기 층이 존재합니다. 단 두 글자의 차이인데, 테이블 위로 흐르는 온도가 미묘하게 바뀝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기 전에 관계의 좌표를 찍는 깃발인 까닭입니다.

최근 연예인 미르가 장모님을 향해 ‘장모’라고 지칭했다가 구설에 올랐습니다. 유튜브 채널 ‘방가네’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장모님이 226만 원짜리 한약을 선물해주자 기분이 좋았나 봅니다. “우리 장모가 나 힘들다고 한약 맞춰줬다”, “우리 장모 돈 많이 번다” 같은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습니다. 장모님이 58년생이라는 둥, 라인댄스를 배운다는 둥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덧붙였습니다. 친밀함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격식 따위 필요 없는, 친구 같은 사위라는 자부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서늘했습니다. ‘장모’라는 단어에서 ‘님’이 빠진 순간, 그것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자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에서 ‘장모(丈母)‘는 아내의 어머니를 이르는 명사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전 밖으로 나온 단어는 사회적 맥락이라는 옷을 입습니다. 면전에서 혹은 제삼자에게 ‘님’을 떼고 부르는 건, 상대와의 수평적 관계를 넘어선 무례함의 경계에 닿아 있습니다.

한국어는 주어 없이도 말이 통하는 경제적인 언어입니다. 대신 그 자리를 호칭이 메웁니다. 누가 누구를 부르느냐에 따라 문장의 끝맺음이 달라지고 공경의 수위가 결정됩니다. ‘우리 장모’라는 표현 속의 ‘우리’는 끈적한 유대감을 상징하지만, 뒤따라온 ‘장모’는 그 유대감을 일방적인 소유물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상대를 자신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 아래의 위치로 상정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어법입니다.

사무실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봅니다. 수평적 문화를 만든다며 ‘프로’나 ‘매니저’ 혹은 ‘이름+님’으로 호칭을 통일합니다. 직급의 벽을 허물겠다는 취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가끔 사석에서 혹은 감정이 격해진 순간 ‘님’을 떼고 이름만 툭 던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친해졌다는 착각이 예의를 집어삼키는 순간입니다. 호칭의 단순화가 관계의 단순함으로 이어질 거라는 오해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예의는 타인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실은 나 자신을 상식적인 인간으로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선을 넘는 건 자유지만, 그 선은 내가 긋는 게 아니라 상대가 허락해 주는 영역입니다. 미르가 자랑했던 ‘친구 같은 사위’라는 타이틀도 결국 장모님의 허락이 전제되어야 유효합니다. 대중이 불편함을 느낀 지점은 그 허락의 과정이 생략된 채, 화자 혼자서 ‘선’을 지워버린 오만함에 있었을 겁니다.

점심시간, 식당 이모님을 부르는 동료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누군가는 굳이 ‘님’을 붙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존중을 표하고, 누군가는 ‘언니’나 ‘어머니’를 남발하며 선을 넘나듭니다. 친밀함이라는 명분이 무례함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58년생 장모님이 강아지와 6시간을 산책하든 라인댄스를 추든, 그것은 그녀의 삶이지 사위의 콘텐츠 소재가 아닙니다.

모니터 앞에 앉아 메신저 창을 켭니다. 상대의 이름 뒤에 붙일 글자 하나를 고민합니다. 그 사소한 ‘님’ 한 글자가 없었다면, 우리의 사회적 관계는 얼마나 더 위태로웠을까요. 호칭은 거리두기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사라진 ‘님’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입니다.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미르 “우리 장모 돈 많아” 선 넘은 친밀함이 부른 화…비판 폭주에 ‘삭제…

김현빈 Developer & Writer

기술, 포스팅 관련 질문, 프로젝트 협업 등 연락주시면 언제든지 회신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