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키보드 틈새에 낀 먼지를 털어내다 문득 손끝에 닿는 건조함을 느낀다. 오후 3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미지근한 정수기 물로는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 퇴근길 지하철역 앞 편의점, 네 캔에 만 원짜리 수입 맥주 매대 앞을 서성이는 발걸음도 건조하긴 마찬가지다. 알코올로 뇌를 마비시켜 하루의 피로를 휘발시키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기에는, 아침에 마주할 숙취의 비용이 너무 크다. 이제 사람들은 맛을 찾고, 취향을 소장하며, 그 병 속에 담긴 서사를 음미한다.
오는 18일부터 사흘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C홀에서 열리는 ‘2026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 소식을 접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선택지’였다. 1992년 첫 개최 이후 매년 6월이면 애주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 행사는 단순히 술을 마시고 취하는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감각의 발견이고, 지루한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는 탐험이다. 주최사인 한국국제전시(대표 문영수)가 준비한 이번 박람회는 전 세계의 다양한 주종이 한자리에 모여 거대한 취향의 지도를 그린다.
최근 몇 년간 이 박람회장 입구에는 이른 아침부터 긴 대기 행렬이 늘어선다. 이른바 주류 ‘오픈런’이다. 희귀한 싱글몰트 위스키나 소규모 양조장의 한정판 내추럴 와인을 손에 넣기 위해 기꺼이 대기 시간을 감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꽤 직관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대량 생산된 초록색 소주병이나 일률적인 라거 맥주에 자신을 맞추던 시절은 지났다. 내 입에 들어가는 액체만큼은 온전히 내가 통제하고 선택하겠다는 선언이다.
직장인에게 술은 양날의 검이다.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회식 자리의 술은 고역이지만, 금요일 밤 나 홀로 조용히 잔에 따르는 한 모금은 완벽한 구원이 된다. 이번 박람회는 그 구원의 도구를 조금 더 섬세하게 골라볼 기회다. 대형 마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낯선 와이너리의 빈티지 와인부터, 한국 전통 누룩으로 빚어낸 독특한 산미의 전통주, 과일 향 가득한 크래프트 사이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현장에서 부스 사이를 천천히 거닐다 보면, 스스로 몰랐던 미각의 취향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피트 향이 강한 위스키에 눈살을 찌푸리는지, 아니면 가죽 냄새와 흙내음이 나는 레드 와인에 매료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시음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타인의 기준이나 유행이 아닌, 내 혀끝이 느끼는 솔직한 직관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주중의 피로가 묵직하게 어깨를 누를 때, 달력에 표시된 ‘주류박람회’라는 다섯 글자는 묘한 해방감을 준다. 꼭 거창한 지식을 가지고 갈 필요는 없다. 라벨의 디자인이 예뻐서, 혹은 병의 모양이 독특해서 고르는 가벼움도 훌륭한 접근법이다. 중요한 것은 매일 똑같은 모니터 불빛에서 벗어나 향과 맛이라는 아날로그적 감각에 온전히 몰입해 보는 경험 그 자체다.
삶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잔을 가볍게 흔들 때 유리벽을 타고 흐르는 액체의 흔적을 가만히 응시하는 일, 삼킨 뒤 목뒤로 넘어가는 열감과 코끝을 맴도는 잔향을 음미하는 3초의 고요 속에 존재한다. 다음 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코엑스 C홀을 메울 수많은 향기 속에서 나만의 ‘인생 잔’을 발견하는 일도 좋겠다. 꼭 취하지 않아도 괜찮다. 손에 든 가벼운 시음 잔 하나만으로도 일상의 온도는 충분히 데워질 테니까.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2026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 오는 18일부터 3일간 코엑스서 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