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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화원과 7km의 고행

여의도 일대를 뒤덮은 작은 생명체들과 직장인의 점심 산책이 미션이 되는 순간에 대하여.

식당 입구마다 늘어진 줄이 어지럽다. 셔츠 깃 사이로 맺힌 땀을 닦으며 다들 비슷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본다. 여의도의 점심시간은 늘 그렇듯 치열하고 건조하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연료 섭취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오후 회의를 버티기 위한 침묵의 충전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 이 무채색의 빌딩 숲 사이로 묘한 활기가 섞여 든다. 정장을 입은 남성도, 힙색을 멘 여행객도 약속이라도 한 듯 가방에 작은 종이 바이저를 꽂고 있다. 화면 속에는 알록달록한 생명체들이 가상의 꽃길을 만들며 걷고 있다.

나이언틱이 5월 23일부터 양일간 여의도에서 열고 있는 ‘피크민 블룸 저니 2026 : 서울’ 현장이다. 작년 동대문에 이어 두 번째다. 일본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유료 행사라고 한다. 돈을 내고 걷는 행위. 누군가에게는 기묘하게 들리겠지만, 이미 수많은 이들이 IFC몰과 여의샛강 도서관을 잇는 7km의 경로를 훑고 있다. 걷는다는 행위에 목적과 서사가 부여될 때, 그건 더 이상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수집이고, 성취이며, 일상의 확장이다.

야마자키 토모 나이언틱 총괄 매니저의 말처럼 한국 이용자들은 이 게임을 꽤나 독특하게 소비한다. 단순히 캐릭터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지인들과 포토카드를 주고받으며 사교의 도구로 쓴다. 원작인 닌텐도의 ‘피크민’을 몰랐던 이들도 상관없다. 발걸음마다 가상 세계의 꽃이 피고, 내가 지나온 길에 흔적이 남는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뻐근한 뒷목을 문지르며 모니터만 응시하던 직장인들에게, 내가 오늘 1만 보를 걸었다는 사실보다 ‘보라 피크민에게 서울 로제트 데코를 입혔다’는 결과물이 더 직관적인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행사 코스는 만만치 않다. 이랜드크루즈 터미널부터 샛강까지 이어지는 16개의 스폿을 돌려면 족히 두 시간은 필요하다. 구두 뒷굽이 보도블록에 부딪히는 소리가 리드미컬하다. 스페셜 스폿을 향해 스마트폰을 스와이프하면 파랑 히비스커스 정수가 쏟아진다. 거대 축제 버섯과 싸우기 위해 낯선 이들과 나란히 서서 화면을 두드리는 광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기술은 고독한 산책자들을 광장으로 끌어낸다. 각자의 스마트폰이라는 투명한 막 뒤에 숨어 있지만, 실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다는 동질감이 여의도 한강 변에 묘한 기류를 만든다.

스다 히유키 게임디자이너가 언급한 ‘한강 라면’은 어쩌면 이 게임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지점일지도 모른다. 게임은 거창한 세계 구원이 아니라, 걷다가 배가 고파 먹는 라면 한 그릇의 맛을 더 진하게 만들어주는 양념이다. 서울 한정 배지를 얻기 위해 땀 흘려 걷고, 그 끝에서 마주하는 강바람과 허기를 달래는 행위. 기술은 인간을 방 안으로 고립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토록 집요하게 밖으로 밀어내어 실제 세계의 냄새를 맡게 한다.

취재진에게 공개된 IFC몰 노스아트리움의 열기는 뜨겁다. 모종을 찾고, 엽서를 교환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누군가는 제주도에서도 이런 행사를 열어달라 청한다. 일상의 모든 장소를 게임 판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지루한 출퇴근길, 반복되는 점심 산책이 ‘레벨 업’과 ‘아이템 획득’의 과정으로 치환되는 순간, 삶의 권태는 잠시 힘을 잃는다.

어쩌면 우리가 기술에 바라는 것은 대단한 혁신보다 이런 사소한 다정함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걸음 수에 이름을 붙여주고, 길가에 핀 흔한 풀꽃 사이에서 가상의 모종을 발견하게 하는 것. 오늘 여의도를 걷는 수천 명의 직장인은 아마 오후 업무 중에 몰래 주머니 속을 확인할 것이다. 내가 심은 꽃이 얼마나 자랐는지, 내가 걸어온 7km가 어떤 모양의 배지로 남았는지 보며 슬쩍 웃음 지을지도 모른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아까보다 조금은 가볍다. 손목시계를 보니 어느덧 1시다. 미션은 끝났고, 다시 숫자로 가득 찬 엑셀 화면이 기다린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 주머니 속에는 방금 한강 변에서 주워온 보라색 피크민 한 마리가 잠들어 있으니까. 내일 점심엔 한 정거장 먼저 내려볼까 생각한다. 기술이 일상에 건네는 가장 세련된 유혹은, 결국 다시 걷게 만드는 힘이다.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취재] 피크민과 한강 산책 즐기세요! 나이언틱 ‘피크민 블룸 저니 202…

김현빈 Develop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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