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후의 나른함이 밀려오는 오후 12시 40분. 사무실 책상 위 듀얼 모니터에는 여전히 10년 전 설계된 듯한 투박한 UI의 내부 시스템 창이 떠 있다. 클릭 한 번에 3초씩 걸리는 응답 속도, 겹겹이 쌓인 보안 프로그램의 경고창들. 대형 금융사나 공공기관의 IT 환경을 마주해본 이들이라면 익히 아는 풍경이다. 세상을 바꾼다는 챗GPT니 뭐니 하는 말들은 이 단단한 망 분리의 벽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최신 기술은 화려하지만, 정작 실무자들이 매일 만지는 ‘레거시’라는 이름의 괴물과는 좀처럼 섞이지 못한다.
최근 들려온 노크랩의 KB스타터스 선정 소식은 그래서 조금 다르게 읽힌다. 10.7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었다는 수치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이 팀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연차다. 10년에서 30년. 금융, 통신, 공공 IT의 밑바닥부터 굴러온 베테랑들이 모였다. 머리칼이 희끗해진 이들이 AI라는 가장 젊은 도구를 들고 화석화된 시스템의 문을 두드린다. 혁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20대 창업자의 패기 대신, 이들에게서는 ‘안 되는 이유’를 수만 가지 겪어본 사람 특유의 신중함이 읽힌다.
금융권 시스템은 거대한 늪이다. 코드 한 줄을 고치려 해도 연결된 다른 시스템 수십 개가 발목을 잡는다. 비정형 문서들은 분류되지 않은 채 서버 어딘가에 쌓여 있고, 트래픽이 조금만 몰려도 RDBMS는 비명을 지른다. 이런 환경에 단순히 인공지능 모델 하나를 얹는다고 해결될 리 없다. 노크랩이 내세우는 전략은 파괴적 혁신보다는 정교한 수술에 가깝다. 그들이 주력으로 삼는 KAG(지식증강생성) 아키텍처와 ‘캐스트디비(CAST-DB)‘는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한다.
기존의 검색 증강 생성(RAG)이 단순히 문서를 찾아주는 수준이었다면, 이들이 말하는 방식은 복잡한 문서를 지식 그래프 형태로 구조화하는 단계를 거친다. 엑셀, PDF, 워드 파일 속에 파묻힌 정보를 트리 구조로 패턴화하는 ‘도큐버스’나 ‘도큐탭’ 같은 기술은 말하자면 엉망진창인 서고에 완벽한 도서 목록을 만드는 일이다. 데이터가 정돈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지능을 가져다 놓아도 헛소리(환각)를 할 뿐이라는 사실을, 현장을 아는 이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재미있는 건 속도에 대한 집착이다. CAST-DB라는 가속 솔루션을 통해 기존 시스템의 처리 속도를 끌어올렸다는 대목은 실무적이다. 금융권에서 ‘느린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리스크다. 초고속 처리를 요구하는 환경에서 AI가 제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밑바닥의 파이프라인부터 손봐야 한다. 국가공인시험기관의 검증을 받았다는 사실은 기술적 자부심이기도 하겠지만, 보수적인 금융권을 설득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명분이었을 것이다.
김연빈 대표를 필두로 한 이 팀의 행보는 세련된 카페에서 코딩하는 유니콘 기업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형광등 불빛 아래서 로그 파일을 뒤지고, 망 분리 환경의 까다로운 규제를 통과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것은 마치 낡은 증기선에 최신 핵융합 엔진을 이식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엔진만 좋다고 배가 나아가는 건 아니다. 낡은 선체가 수압을 견딜 수 있는지, 조타 키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파악하는 노련한 선장의 눈이 필요하다.
기업용 생성형 AI 플랫폼 ‘씽크플로우’가 실제 금융 현장에서 어떤 답을 내놓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든 것을 갈아엎자는 구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체계의 생리를 존중하면서 그 틈새에 지능의 신경망을 조심스럽게 심어 넣는 기술. 그것은 기술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결국 수많은 프로젝트를 실패하며 쌓아온 경험의 영역이기도 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삐걱거리는 시스템에 접속한다. 언젠가 이 느린 창 너머로 유능한 AI 비서가 답을 건넬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그 AI 뒤에는 아마도, 금융권의 생태를 속속들이 아는 어느 베테랑의 밤샘 작업이 녹아 있을 것이다. 혁신은 0에서 1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낡은 99를 100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노크랩의 도전이 단순히 한 스타트업의 성공을 넘어, 경직된 조직의 시스템을 유연하게 만드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노크랩, ‘KB스타터스’ 선정…금융권 AI 시장 공략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