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식탁엔 붉은 떡볶이 국물이 묻은 플라스틱 용기가 놓여 있었다. 아내가 고른 메뉴였고, 나는 군말 없이 젓가락을 얹었다. 연애 시절엔 서로의 취향을 맞추려 노력했다면, 이제는 서로의 식성을 공유한다. 아니, 정확히는 식단을 투사한다.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리모컨을 돌리는 각도까지 비슷해질 즈음, 건강검진 결과표의 수치도 묘하게 겹치기 시작한다. 닮아간다는 말은 때로 낭만보다 섬뜩한 생물학적 징후에 가깝다.
‘대사증후군 및 관련 장애(Metabolic Syndrome and Related Disorders)’ 학술지에 작년 발표된 데이터를 읽었다. 배우자가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으면, 상대방의 위험도가 약 1.5배 높게 나타난다는 통계다. 1.5배. 숫자가 주는 무게감이 묵직하다. 사랑의 결실이 고혈압과 당뇨의 전조 증상이라니, 낭만적인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 한 집안의 공기는 평등하고, 식탁 위 메뉴는 민주적이다. 그 민주주의가 가끔은 하향 평준화를 불러온다.
국민건강영양조사를 기반으로 한 2022년 연구도 결이 같다. 비만도,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는 부부 사이에서 상호 영향을 미친다. 운동 부족과 식습관, 흡연 여부까지 한 바구니에 담긴다. 인천힘찬종합병원 내분비내과 김유미 과장의 설명은 건조하다. 식사 구성과 활동량, 수면 환경을 장기간 공유하기 때문이란다. 한 침대에서 자고 같은 냄비에 숟가락을 담그는 행위가 생물학적 동기화로 이어지는 셈이다. 운명 공동체라는 말은 은유가 아니라 데이터였다.
오후 12시 15분. 점심시간 식당을 가득 채운 직장인들을 본다. 돈가스나 제육볶음을 앞에 둔 그들의 저녁 식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맞벌이 부부에게 저녁은 일종의 보상이다. 하루 종일 상사와 고객에게 시달린 보상을 배달 앱의 자극적인 맛으로 찾는다. 아침은 거르고 밤엔 폭주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고 혈당이 널을 뛴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간에 기름이 낀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그렇게 부부의 공동 재산이 된다. 통장의 잔고는 각자 관리해도, 혈관 속 중성지방은 함께 쌓아가는 역설이다.
중년으로 넘어가면 양상이 복잡해진다. 여성은 완경과 함께 에스트로겐이라는 방패를 잃는다. 복부 비만이 찾아오고 이상지질혈증이 문을 두드린다. 남성 역시 근육이 빠진 자리를 내장지방으로 채운다. 김유미 과장은 이 시기에 배우자의 안면홍조나 무기력증을 유심히 보라고 조언한다. 단순히 나이 탓으로 돌리기엔 그 변화의 폭이 가파르다. 호르몬 체계의 붕괴는 개인의 의지로 막기 어렵다. 서로의 낯빛을 살피는 건 사랑보다 생존의 문제다.
노년 부부의 건강 공유는 조금 더 물리적이고 가시적이다. 한 명의 걸음이 느려지면 다른 한 명도 보폭을 줄인다. 보폭이 좁아지는 건 배려일 수도 있지만, 근력의 동반 하락일 가능성이 더 크다. 부평힘찬병원 정형외과 김태섭 원장은 근감소증과 보행 능력을 강조한다. 계단을 오를 때 무릎 통증을 호소하거나 자꾸 휘청거리는 배우자를 보는 건, 곧 나의 미래를 예습하는 일과 같다. 통증 때문에 활동을 줄이면 근육은 더 빠르게 빠진다. 악순환의 톱니바퀴가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
인지 기능의 저하도 마찬가지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익숙한 길을 헤매는 상대의 모습에서 치매의 그림자를 읽어내는 건 오직 배우자만이 할 수 있는 관찰이다. 어제 했던 이야기를 오늘 또 하는 남편, 약 복용을 자꾸 빠뜨리는 아내. 건망증이라 치부하며 넘기기엔 그 대가가 너무 크다. 일상생활의 기능 저하가 동반된다면 그건 노화가 아니라 질병의 신호다.
건강은 흔히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먹고 얼마나 움직이는지가 전부라고 믿는다. 하지만 집이라는 폐쇄된 생태계 안에서 개인의 의지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배우자가 라면을 끓이면 나도 젓가락을 들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냉장고를 채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집안 사람들의 혈당이 결정된다. 부부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 속의 내가 아프면, 거울 밖의 나도 안전할 리 없다.
오늘 점심,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건 나지만 그 결과는 저녁 식탁에서 배우자와 나눈다. 건강의 복리는 좋은 습관에만 붙는 게 아니다. 나쁜 습관 역시 이자가 붙어 서로에게 전이된다. 1.5배의 위험도를 낮추는 법은 거창하지 않다. 배달 음식을 한 번 줄이고, 함께 동네 한 바퀴를 걷는 것. 그 사소한 합의가 서로의 노년을 구원할지도 모른다. 사랑은 같이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기도 하지만, 같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걷는 것이어야 한다. 식탁 위의 거울은 정직하다.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남편 고혈압인데, 아내도… 평생 공유한 ‘이것’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