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화면 속 파란색 백분율 기호 앞에 붙은 마이너스 80이라는 숫자. 평범한 월요일 점심, 식당 대기줄에서 이 숫자를 맞닥뜨렸다면 체기가 얹힐 법하다. 1290원대에서 찰나의 순간에 곤두박질친 가상자산 그래프는 한눈에 봐도 참담하다. 지난 8일 해킹 공격을 받은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휴머니티(H) 토큰 이야기다. 기술적 허점이 뚫렸고, 가치는 순식간에 증발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이끄는 대표의 공식 채널에는 빽빽한 영문으로 가득 찬 사과문이나 기술적 경위를 담은 화이트페이퍼 링크가 올라오기 마련이다.
화면을 새로고침했을 때 나타난 것은 뜻밖의 얼굴이었다. 한국의 여행 유튜버 ‘곽튜브’. 휴머니티 재단 CEO가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돌연 그의 얼굴로 바꾼 것이다.
잠깐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그대로다. 해킹으로 자산 가치가 휴지조각이 된 아수라장 속에서, 글로벌 가상자산 프로젝트의 수장이 선택한 임기응변이 고작 한국 예능에 나오는 인물의 얼굴 사진이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찰나의 순간 기묘하게 비틀어지는 지점이다.
오후 1시, 사무실 모니터 앞으로 복귀하는 발걸음은 무겁다. 책상 위에 놓인 마시다 만 식은 아메리카노 한 잔이 눈에 들어온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비슷한 순간을 겪는다. 수개월을 준비한 프로젝트의 메인 서버가 오픈 당일에 먹통이 되거나, 수만 명에게 발송하는 뉴스레터의 링크를 잘못 넣었을 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그 차가운 감각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수수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습을 해야 한다는 이성과 당장 도망치고 싶다는 본능이 치열하게 싸운다.
대개 납작 엎드리는 방법을 먼저 배운다. 고개를 숙이고, 격식을 차린 문장으로 죄송함을 늘어놓는다. “예기치 못한 오류로 불편을 드려…”로 시작하는 메일 템플릿은 이미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것이 어른의 방식이고 프로의 태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휴머니티 CEO가 던진 곽튜브 프로필 사진은 전혀 다른 문법을 보여준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 것, 혹은 필사적으로 밈(Meme)의 힘을 빌려 생존을 도모하는 것.
인터넷 세상에서 밈은 일종의 방탄조끼다. 심각한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 때, 스스로를 희화화하여 화살의 끝을 뭉툭하게 만든다. 분노에 찬 피해자나 관망자들도 예상치 못한 엉뚱한 반응 앞에서는 칼날을 거두고 일단 밈으로 소비하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 이게 맞나?” 싶은 황당함이 자아내는 헛웃음. 그 헛웃음이 만들어내는 아주 찰나의 유예 기간 동안, 시스템을 복구할 시간을 버는 셈이다.
물론 대책 없는 가벼움은 독이 된다. 돈이 걸린 문제에서 장난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80%가 폭락한 자산을 쥐고 있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CEO의 행동이 기만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피해 복구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 없이 프로필 사진 한 장으로 뭉개려 한다면 그것은 사기에 가깝다.
흥미로운 건 대중이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켜보는 방식이다.
엄숙한 가면을 쓰고 뒤로 책임을 회피하는 기득권의 태도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은, 차라리 바닥을 치는 순간의 솔직한 뻔뻔함에 묘한 흥미를 느낀다. 완벽하게 짜인 사과문보다 날것의 리액션이 더 투명하게 다가오는 역설이다.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할 체력이 고갈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쥐어짜 내는 방어기제가 해학이라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다.
모니터 우측 하단에 메신저 알림이 깜빡인다. 오전 중에 보낸 보고서의 수치가 틀렸다는 피드백이다. 뒷목이 뻐근해진다.
매일 완벽을 연기하며 산다. 실수하지 않는 기계가 되기를 요구받고,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무능함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아무리 튼튼한 방화벽을 세워도 해킹을 당하는 가상자산 시스템처럼, 일상에도 언제든 구멍은 뚫린다.
중요한 건 그 구멍을 마주했을 때의 태도다.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인가, 아니면 엉뚱한 프로필 사진 한 장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던질 것인가.
회의실로 들어가는 길, 곽튜브의 그 묘한 표정을 떠올려본다. 억울함과 해탈이 공존하는 그 얼굴이 어쩌면 오늘 오후를 버텨낼 작은 방패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실수를 지울 수는 없지만, 실수를 견뎌내는 온도는 바꿀 수 있다. 조금 덜 심각해져도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이미 망해버린 80%의 그래프 위에서도 누군가는 사진을 바꾸며 숨을 쉬고 있으니까.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해킹당해 80% 폭락하자 돌연 프로필 사진 ‘곽튜브’로 바꾼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