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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옆 콘서트홀, 평창 계촌마을이 건넨 질문

인구 1700명의 작은 시골 마을이 대도시의 화려한 축제보다 더 단단한 생명력을 갖게 된 비결을 짚어봅니다.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지도 앱을 한참 확대해야 겨우 이름이 드러나는 이 작은 마을의 주민 수는 고작 1700명 남짓입니다. 평소에는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나 경운기 엔진음이 소음의 전부일 이곳에, 일 년 중 며칠 동안은 전혀 다른 종류의 파동이 공기를 채웁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

대형 콘서트홀의 푹신한 붉은 시트 대신 흙먼지 날리는 초등학교 운동장 잡초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습니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면, 무대 뒤편으로는 초록색 옥수수 밭과 나지막한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집니다. 독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에서 활약하고 통영국제음악제를 이끌었던 클래식 기획자가 이 외딴 시골 마을의 축제를 지휘합니다. 화려한 대도시의 공연장을 뒤로하고 이들이 가닿고자 한 곳은 어쩌면 ‘삶의 가장자리’였을지도 모릅니다.

계촌마을의 변화는 화려한 정부 예산이나 거대 기업의 일회성 후원으로 급조된 것이 아닙니다.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전교생이 수십 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몰렸던 계촌초등학교 아이들이 전원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면서부터였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이올린 활을 켜고 트롬본을 불던 아이들의 소리가 동네 골목을 채웠습니다. 시끄러운 연습 소리에 타박을 줄 법도 한 이웃들은 되려 아이들의 서툰 음정을 묵묵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삼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마을 전체가 서서히 하나의 거대한 울림통으로 변해갔습니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전국에서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이 불편하고 먼 시골길을 찾아옵니다. 서울에서 가려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굽이치는 국도를 한참이나 더 달려야 합니다. 널찍한 주차장도 없고,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 찾기 힘든 이곳에 왜 사람들은 제 발로 찾아와 불편함을 감수할까요.

대도시의 축제는 대개 ‘소비’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유명 가수를 섭외하고, 화려한 LED 조명과 푸드트럭을 늘어놓습니다. 관객은 돈을 지불하고 그 순간의 자극을 구매한 뒤 흩어집니다. 축제가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은 산더미 같은 쓰레기와 텅 빈 광장뿐입니다. 소비자는 있지만 관계는 남지 않습니다.

반면 작은 마을의 축제는 ‘생활’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자신들이 매일 걷던 골목을 내어주고,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만든 음식을 건냅니다. 무대 위의 연주자 역시 관객의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거리에서 활을 켭니다. 거창한 에티켓이나 격식은 잠시 내려놓습니다. 연주 도중 뜬금없이 울리는 산새 소리나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마저 음악의 일부가 됩니다. 완벽한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콘서트홀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교감입니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라는 거창한 단어들이 매일 뉴스 지면을 장식합니다. 정부는 수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어 지방에 건물을 짓고 도로를 냅니다. 하드웨어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두지 못합니다. 텅 빈 미술관과 이용객 없는 체육관이 전국 곳곳에 유령처럼 서 있는 이유입니다.

계촌마을이 보여주는 모델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화려한 랜드마크를 짓는 대신, 마을이 가진 가장 연약하고 소박한 부분인 ‘아이들의 배움’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불씨를 마을 주민들이 함께 품어 안았고, 그것이 외부의 예술가들과 연결되면서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었습니다. 억지로 외지인을 끌어모으기 위한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자신들이 재미있어서 지켜온 일상에 남들을 슬쩍 초대하는 방식입니다.

초대받은 이들은 그곳에서 단순히 음악만 듣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불편을 감수하며, 마을의 속도에 자신들의 걸음을 맞춥니다. 주차할 곳이 없어 먼 길을 걸어가면서도 투덜대기보다 길가에 핀 들꽃을 봅니다. 이 작은 커뮤니티가 가진 단단하고 따뜻한 밀도가 도시인들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모니터 화면 속 픽셀들과 싸우며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들에게 축제는 어쩌면 먼 나라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가끔 주말에 찾는 대형 복합 쇼핑몰이나 세련된 팝업 스토어는 편리하지만 늘 어딘가 허전합니다. 그 공간의 주인이 아니라 철저한 관찰자이자 소비자로만 머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대단한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무언가 지속 가능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일상의 작은 모퉁이부터 천천히 가꾸어 나가는 태도. 그것이 1700명의 마을을 1만 명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바꾼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콘크리트 틈새로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 하나에 눈길을 주어봅니다. 삶의 가장자리에도, 생각보다 꽤 근사한 멜로디가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1700명 마을에 클래식 손님 1만명…“자유로운 축제 선보이겠다”

김현빈 Develop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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