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 때 나는 특유의 쇠 부딪치는 소리가 있다. 정밀하게 물려 있던 플라스틱 결합부가 서서히 벌어지면, 그 안에서 드러나는 것은 차가운 초록색 기판과 몇 가닥의 얇은 케이블뿐이다. 기계의 속살은 언제나 단조롭다. 거기엔 어떠한 정치적 수사도, 화려한 로고의 권위도 없다. 그저 전류가 흐르는 구리선과 칩셋의 배열만 존재할 뿐이다.
최근 테크 유튜버들과 IT 매체들이 분해한 ‘트럼프폰(T1)’의 내부가 딱 그랬다. 껍데기는 번쩍이는 금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속을 열어보니 2년 전 대만 HTC가 출시했던 스마트폰의 부품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배터리를 제외한 메인보드, 카메라 모듈, 디스플레이 커넥터의 위치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부품을 그대로 들여와 미국 내에서 조립만 한 뒤, 뒤판에 금색 도색을 입히고 독자적인 브랜드 이름을 붙여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이것을 기술적 사기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고도의 마케팅 기법이라고 해야 할까.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상향 평준화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더 이상 프로세서의 속도가 몇 기가헤르츠인지, 램 용량이 몇 기가바이트인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성능의 차이는 일상의 스크롤 속도에서 거의 체감되지 않는다. 기술의 상향 평준화는 역설적으로 제품의 알맹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겉면에 어떤 로고가 박혀 있고, 그것이 소지자의 어떤 정체성을 대변하느냐는 무형의 가치다.
트럼프폰을 구매한 이들이 기대한 것은 퀄컴의 최신 스냅드래곤 칩셋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액정 뒤편에 각인된 이름과 그 이름이 주는 특유의 상징성을 구매했다. 2년 전 대만 공장에서 굴러다니던 재고 부품들이 미국 땅을 밟고 금색 옷을 입는 순간, 그것은 테크 기기가 아니라 하나의 기념품이자 신념의 상징으로 탈바꿈한다. 브랜딩이란 어쩌면 이처럼 평범하고 낡은 실체 위에 덧입히는 가장 비싼 도금 작업일지도 모른다.
점심시간에 마시는 프랜차이즈 커피를 본다. 컵 홀더에 찍힌 초록색 세이렌 로고나 파란색 블루보틀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만족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원두의 원가와 에스프레소 머신의 감가상각비를 따지기 시작하면 커피 한 잔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한다. 종이컵을 손에 쥐었을 때 느끼는 미묘한 안도감과 세련됨, 즉 브랜드가 파는 ‘분위기’를 구매하는 셈이다.
직장에서 만드는 보고서나 기획서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매번 완전히 새로운 혁신을 담은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년에 썼던 포맷, 다른 부서에서 쓰던 데이터를 조금씩 가져와 짜깁기하고, 그 위에 그럴싸한 최신 트렌드 용어로 도색을 입힌다. 껍데기를 어떻게 씌우느냐에 따라 평범한 재고 부품 같던 아이디어가 대단한 혁신 기획안으로 둔갑한다. 포장의 기술을 비웃으면서도 정작 그 포장에 목을 매는 이유다.
알맹이가 비어 있는 브랜드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내부 부품이 구형인데 가격만 비싸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체가 없는 껍데기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격언은 도덕적 위안을 준다. 실상은 다르다. 대중은 생각보다 실체에 관심이 없다. 그것이 내포하는 환상과 소속감이 매력적이라면, 속이 2년 전 부품으로 채워져 있든 구형 설계든 기꺼이 지갑을 연다.
스마트폰 뒷면의 차가운 금속 감촉을 느껴본다. 매끈하게 마감된 알루미늄 판 아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부품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이다. 성능 수치나 원산지 표시를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어차피 이 기기가 제공하는 익숙한 화면 속에서 내 일상의 절반 이상이 흘러간다.
트럼프폰의 금색 도색을 보며 실소하는 동안에도, 내 손에 든 물건의 정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스친다. 우리는 실체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거대한 유령이 뿌려놓은 이미지의 파편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잘 닦인 액정 너머로 흐릿하게 비치는 내 얼굴이, 어쩐지 겉과 속이 다른 스마트폰의 기판을 닮아 있는 듯해 묘한 기분이 든다.
다시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후에는 또 어떤 그럴싸한 포장지를 만들어내야 할지, 다 닳은 머리를 굴려봐야겠다.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금색으로 도색만”… 트럼프폰 뜯어보니, 2년 전 HTC폰과 부품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