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책상 서랍 세 번째 칸에는 정체 모를 케이블선 세 개와 작동은 하지만 손이 가지 않는 구형 마우스가 누워 있습니다. 버리기엔 아깝고 남 주자니 멋쩍은, 이 애매한 부피의 물건들은 계절이 세 번 바뀔 동안 제자리를 지켰습니다.
대청소를 다짐하는 주말마다 이들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합니다. 쓰임새를 잃어버린 물건은 공간을 차지하는 만큼의 미세한 피로감을 얹어줍니다. 버린다는 행위가 주는 미안함을 유유히 미뤄두느라 서랍 속에 작은 공동묘지를 만드는 일은 꽤 흔합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한 건물에 수천 명 모여 있다면 어떨까요. 옷장 구석에 걸린 채 손이 가지 않는 셔츠, 선물 받았으나 포장도 뜯지 않은 찻잔 세트 같은 것들이 한데 모이는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며칠 전 활자 속에서 흥미로운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이라는 대기업 임직원들이 지난 10년 동안 해온 일입니다. 이들은 매년 두 차례씩 집안의 쓸 만한 물건들을 모아 상자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물품들이 사회적 기업인 굿윌스토어로 흘러갑니다. 지난 4월 진행된 올해 상반기 물품 기증 캠페인에서만 6,640점의 물품이 쌓였습니다. 지난 10년간 이 상자를 채우기 위해 주말에 옷장을 털고 서랍을 비운 임직원은 누적 7,385명에 달합니다.
단순히 좋은 일을 했다는 일회성 미담으로 치부하기엔 1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묵직합니다. 10년은 강산이 변한다는 상투적인 문구 뒤로, 수많은 담당자가 바뀌고 조직의 형태가 리모델링되는 세월입니다. 첫해에 입사해 재미 삼아 물건을 기증했던 신입사원이 이제는 부서의 중간 관리자가 되어 새로 들어온 후배에게 기증 상자의 위치를 무심히 가리키는 시간입니다.
기여한다는 감각은 휘발성이 무척 강합니다. 구호 단체에 전화를 걸거나 연말에 구세군 냄비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는 행위는 순간의 온기를 남기지만, 삶의 궤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온정이 제도로, 제도가 다시 개인의 일상적 ‘귀찮음을 이겨내는 습관’으로 내려앉을 때 비로소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단단한 뼈대가 만들어집니다.
이 캠페인이 조용히 10년을 버틴 비결은 거창한 도덕적 훈계에 있지 않아 보입니다. 더 이상 쓰지 않지만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처리하는 가장 품위 있고 합리적인 경로를 회사 마당에 깔아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부라는 무거운 단어 대신, 출근길에 가방 한쪽에 안 쓰는 텀블러 하나를 넣어오는 가벼운 몸짓이 10년 동안 반복되면서 일종의 문화적 지형을 형성했습니다.
굿윌스토어로 흘러간 물건들은 분류되고 닦여서 다시 매대에 올라갑니다. 이 과정 전체가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됩니다. 기증된 물품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를 넘어, 누군가가 아침에 눈을 떠 갈 곳이 있다는 감각, 즉 출근의 일상을 지탱합니다. 6,640개의 물건은 곧 누군가의 수천 시간의 노동이자, 자립의 징검다리가 됩니다.
점심시간에 나와 볕을 쬐며 걷는 오피스가 이어진 거리는 차갑고 견고해 보입니다. 다들 저마다의 모니터 앞에서 숫자를 맞추고 텍스트를 채우느라 바쁩니다. 각자의 톱니바퀴를 돌리느라 바쁜 이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상상해 봅니다. 내가 지난 계절에 입지 않았던 재킷 한 벌이 어느 발달장애인의 손을 거쳐 다림질되고, 그것이 필요한 누군가의 손에 닿아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순환. 거창한 연대나 뜨거운 눈물 없이도, 시스템이 만들어낸 차분한 규칙성이 이 도시를 조금은 덜 쓸쓸하게 만듭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서랍을 다시 열어봐야겠습니다. 먼지 쌓인 물건들을 솎아내며, 이것이 흘러갈 다음 목적지를 그려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뻐근한 목덜미 뒤로 조금은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는 듯합니다.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현대엔지니어링, 굿윌스토어와 10년 동행… 발달장애인 자립 지원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