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메일을 열었더니 사내 인사 시스템에서 발송한 올해 상반기 채용 결과 보고서가 들어와 있다. 마우스를 슥슥 내리다 ‘신입 사원 합격자 평균 연령’이라는 단어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숫자는 참 건조하다. 한 사람의 생을 그 작은 텍스트 상자 안에 아주 단순하게 요약해 버린다.
서른둘, 서른넷. 입사 지원 자격을 두고 커뮤니티에서 설왕설래하는 글들을 자주 본다. 이 나이에 신입으로 들어가면 선배들이 불편해하지 않겠냐는 둥,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둥의 걱정들. 타인이 멋대로 그어놓은 선을 보며 사람들은 슬그머니 자기 발끝을 뒤로 뺀다. 마치 그 선을 넘어가면 삶의 엔진이 영영 멈춰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안해하면서.
최근 예능 영상 하나를 보았다. 걸그룹 오마이걸의 멤버 효정이 예전 무명 시절을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지금 보면 솜털도 안 가신 스물한 살의 나이. 당시 걸그룹 오디션 시장에서 그 나이는 ‘퇴물’ 취급을 받았단다. 여러 기획사에서 “우리는 스무 살 넘은 사람은 안 뽑는다”는 말을 들으며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는 고백.
겨우 스물한 살에 자신의 가치가 만료되었다는 판정을 받는 삶은 어떤 온도였을까. 좁은 7평짜리 오피스텔 원룸, 침대 바로 옆에 주방 싱크대가 있어 라면만 끓여도 온 방안에 냄새가 차던 시절의 일이다. 사치할 돈도 없어 동전 몇 개를 아끼며 살아가던 그 청춘에게, 세상이 들이밀었던 ‘스무 살 장벽’은 거대하고 단단한 시멘트 벽 같았을 것이다.
세상이 정해둔 필터는 언제나 단순하고 게으르다. 등급을 매기기 쉽고, 거르기 편하니까 숫자를 쓴다. 오디션장의 심사위원들에게는 스무 살과 스물한 살의 차이가 대단한 기준이었을지 모르나, 한 인간의 재능과 깊이를 담아내기에 그 숫자는 터무니없이 작다.
스물한 살의 효정은 타협하지 않았다. 가수를 포기하겠다는 마지막 각오로 나간 연합 오디션에서, 그는 되레 9개 회사의 러브콜을 받았다. 세상이 그어놓은 유통기한을 비웃듯, 자기 안의 단단한 무언가를 증명해 낸 순간이다. 연습생 생활 10개월 만에 데뷔해, 지금은 전셋집을 얻고 어엿한 중견 가수가 된 그의 서사는 묘한 해방감을 준다.
직장인의 책상 위에도 날마다 무형의 숫자들이 떠다닌다. 연차, 나이, 연봉 테이블, 자격증 취득 연도. 서른다섯이 넘으면 이직 시장에서 메리트가 떨어진다느니, 마흔 전에는 진급을 해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들. 그런 무성한 말들에 마음을 얹다 보면 뻐근한 목덜미가 더 무거워진다.
개발 부서의 한 동료는 마흔을 앞두고 새로운 개발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 나이에 주니어처럼 처음부터 배우려니 머리가 굳은 것 같다”던 그의 말 뒤에는 깊은 피로와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왜 끊임없이 스스로의 배움과 도전에 나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주저해야 할까.
누군가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은 그들의 행정적 편의를 위한 기준일 뿐이다. 내 삶의 속도를 규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유통기한은 마트 매대에 진열된 우유 팩에나 적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배움이나 도전, 열정에는 유통기한이 찍혀 나오지 않는다.
스물도 늦었다며 문을 닫아걸던 기획사들의 편견 앞에서 기어이 제 자리를 찾아간 효정의 이야기는 일종의 이정표다. 세상이 만든 필터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 알맹이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필터가 내 크기를 담아내지 못할 만큼 좁고 조잡했을 뿐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들고 빌딩 숲 사이를 걷는다. 5월의 햇볕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고, 수많은 직장인들이 저마다의 걸음걸이로 비탈길을 오르고 내린다. 누군가는 빠르게 뛰어가고, 누군가는 느릿하게 풍경을 본다. 정답이 있는 속도는 없다.
다시 사무실 모니터 앞에 앉는다. 뻐근한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남들이 그어놓은 서른이니 마흔이니 하는 숫자들에 흔들리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내 걸음으로만 채울 수 있다. 오후 업무를 시작하는 자판 소리가 조금은 더 가볍고 단단해진다.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효정, “20살 넘으면 걸그룹 안 뽑아” 오디션 무더기 탈락→9개사 러브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