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칼럼 개발일지 작업물 연락처

비효율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낭비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모집 소식을 보며 떠올린, 효율성의 세계 이면에 존재하던 뜨거운 여름의 기억들.

책상 서랍 세 번째 칸, 쓰지 않는 구형 케이블선이 복잡하게 엉켜 있는 구석에서 플라스틱 카드 하나를 주워 올렸다. 모서리가 누렇게 바랜 신분증 목걸이. 오래전 참여했던 영화제의 로고가 흐릿하게 박혀 있다. 먼지를 훅 불어내니 눅눅한 한낮의 열기와 매캐한 아스팔트 냄새가 사무실 공기 사이로 틈입하는 것 같다.

여름의 초입은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뜬금없는 사물 하나가 기억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스마트폰 화면을 쓸어내리다 기사 한 줄을 보았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축제를 함께 이끌어갈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6월 11일, 매년 이맘때면 대학 게시판과 대외활동 커뮤니티가 어김없이 들썩이곤 했다. 붉은색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땀을 흘리던 이들, 상영관 어둠 속에서 무전기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관객의 동선을 살피던 실루엣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돈도 되지 않는 일에 기를 쓰고 뛰어들었을까.

지금의 눈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장사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도서관이나 카페를 두고, 굳이 달아오른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여덟 시간 넘게 서서 버텼다. 까다로운 관객의 불평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밤늦게 녹초가 되어 돌아와 땀에 젖은 티셔츠를 빨아 널던 밤들. 교통비와 식비를 제하면 시급은 제로에 수렴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토익 책을 한 장 더 넘기는 편이 ‘스펙’이라는 무형의 자본을 쌓는 데 훨씬 이로웠을 터다.

생산성과 효율성. 현재 내 일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두 단어다. 기획서 한 줄을 쓸 때도 투입 대비 산출(ROI)을 증명해야 하고, 명확한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 일은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리소스로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것만이 유일한 정의로 대접받는 세계에서 매일 숨을 쉰다. 엑셀 시트의 빈칸을 채울 때마다 이것이 내 인사고과와 회사의 매출에 미칠 영향을 본능적으로 계산하는 기계가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제 자원봉사는 가장 전형적인 ‘비효율’의 영역이다.

기묘한 것은 그 효율적인 것들을 좇으며 보낸 시간은 쉽게 휘발되는 반면, 가장 미련하고 비효율적이었던 그 여름의 기억은 좀체 닳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늦은 밤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어두운 스크린을 타고 올라갈 때, 관객석 뒤편에서 동료들과 조용히 나누던 안도의 눈빛. 일과가 끝나고 해운대 모래사장에 걸터앉아 마시던 미지근한 캔맥주의 맛. 아무런 대가 없이 오직 ‘영화가 좋아서’, 내가 사랑하는 축제의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몸을 던졌던 그 무모함이 여전히 마음에 서려 있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탕진해 본 경험. 그것은 영리한 계산기만 두드려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종류의 훈장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된 모집 공고를 보며, 수많은 젊음이 다시 그 비효율의 세계로 기꺼이 걸어 들어갈 것임을 직감한다. 그들은 여전히 뙤약볕 아래에서 목이 쉴 것이고, 다리가 퉁퉁 부을 것이며, 사소한 오해로 눈물을 흘리거나 평생을 함께할 동료를 얻을 것이다. 손익계산서를 지워버린 자리에 남는 순수한 연대감은 오직 그 더위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은 사람들만이 나눠 가질 수 있는 사치다.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정오의 햇살이 날카롭게 쏟아져 내린다. 스마트폰을 끄고 모니터 앞으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다시 숫자가 지배하고 효율이 우선시되는 진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할 시간이다.

그래도 오늘 오후만큼은 마우스 클릭 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팍팍한 회색빛 일상 밑바닥에, 아무 조건 없이 뜨거웠던 여름날의 파편 하나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마음에 작은 쿠션이 생긴 기분이다. 서랍 속 낡은 신분증 목걸이는 다시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가끔 눈에 밟히는 것만으로도, 먼지를 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축제의 주역, 내 손으로 만드는 영화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자…

김현빈 Developer & Writer

기술, 포스팅 관련 질문, 프로젝트 협업 등 연락주시면 언제든지 회신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