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에 쥔 플라스틱 숟가락 끝에 말라붙은 붉은 고춧가루 양념을 멍하니 바라본다. 찌개 냄새가 옷깃에 깊게 배는 점심시간, 식탁 위는 자극적인 빨간 국물과 짭조름한 반찬들로 채워진다. 입안에 침이 고이지만 동시에 혀끝이 텁텁해진다. 매일 정오마다 반복되는 이 사소한 식사의 선택들이 몸속 어디에 기록되고 있을까. 스마트폰 화면을 켜서 주식 계좌의 수익률을 확인하는 일에는 기민하면서도, 매일 삼키는 염분과 지방의 누적 점수표에는 무감각하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의과대학의 알렉사 프리드먼 교수 연구팀이 최근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발표한 데이터는 다소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연구진은 1959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어난 아동 3만 8,252명의 자료를 기반으로 이들의 7세 시절 혈압을 기록했다. 이들이 평균 54세가 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추적했고, 기나긴 추적 끝에 사망한 이들의 사인과 어릴 적 기록을 대조했다.
결과는 꽤 집요했다. 일곱 살 때 또래에 비해 혈압이 높았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최대 50%나 높았다. 고혈압 환자가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다. 그저 또래 평균보다 조금 더 혈압이 높았던 수준의 아이들도 훗날 심혈관질환 조기 사망 위험이 수축기혈압 기준 13%, 이완기혈압 기준 18%씩 증가했다. 한 배에서 태어나 같은 밥상을 공유하며 자란 형제자매들을 따로 떼어놓고 분석해 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성장 환경이나 가족력의 영향력을 걷어내도, 일곱 살 때 몸이 가리키던 그 아주 작은 혈압의 눈금 자체가 삶의 후반부를 결정짓는 독자적인 변수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개발 영역에서는 시스템 초기 설계 단계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타협을 ‘기술 부채(Technical Debt)‘라고 부른다. 당장 빠르게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엉성하게 짜놓은 코드는 초기에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시스템은 정상 작동하고, 겉보기엔 매끄럽다. 내부에 쌓인 먼지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서비스가 커지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 보이지 않는 엉성함은 눈덩이처럼 이자를 불린다. 먼 미래의 어느 날,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해진 오류 코드는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장애로 돌아온다.
일곱 살의 혈압이라는 지표는 몸이라는 아키텍처가 아주 초기 단계에 쌓아 올린 첫 번째 부채의 기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동기 시절의 생활 방식, 식습관, 미세한 신체적 차이들이 일찌감치 혈관의 탄력과 심장의 부하를 결정짓고,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가 40년, 50년 동안 이자를 불려 나간 셈이다. 몸의 기초 설계도가 이토록 이른 시기에 완성된다는 사실은 어쩐지 조금 허무하면서도 엄숙하게 다가온다.
사무실 모니터 앞에 앉아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커피를 들이켜는 일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건강 관리를 은퇴 이후로 미루거나, 혹은 건강검진 결과표에 빨간 불이 켜진 뒤에야 시작하는 일종의 ‘소방 작업’쯤으로 여긴다. 당장 눈앞의 마감과 프로젝트 성과가 급하다는 이유로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들을 묵살하기 일쑤다. 야근 후 삼키는 자극적인 배달 야식, 업무 스트레스를 핑계로 습관처럼 마시는 액상과당 음료들이 매일 밤 소리 없이 몸의 대장에 기록되고 있음을 잊곤 한다.
생각해보면 몸은 정직한 회계사다. 단 한 번의 파격적인 고액 투자보다, 지루할 정도로 꾸준히 적립되는 소액의 저축이 더 강력한 복리 효과를 발휘한다는 자산 관리의 법칙은 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른 시기의 사소한 습관들이 훗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이자가 되어 돌아오듯, 매일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국물을 한 숟가락 덜 떠먹는 작은 절제가 미래의 치명적인 지출을 막는 든든한 자산이 된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달콤한 음료 한 잔씩을 손에 쥐고 걷는다. 오후의 피로를 이겨내기 위한 당장의 수혈이겠지만, 문득 그 컵 속에 담긴 액상과당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거창한 헬스장 회원권을 끊거나 유기농 식단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저 오늘 저녁 식탁에서 젓가락을 조금 덜 짜게 움직이는 것,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몇 층 정도 걸어 올라가는 것. 그 시시하고 따분한 반복만이 미래의 내가 치러야 할 몸의 이자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조금 덜 자극적인 메뉴를 선택한 오늘의 나에게, 먼 훗날의 내가 고마워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본 칼럼은 매일 12시, 오늘의 뉴스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됩니다. 출처: 7세 혈압이 좌우한 미래 건강… 심혈관 사망 위험 증가